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결혼 전 데이트를 하던 시절, 인상 깊었던 곳이 있다. 오대산 사찰 옆 전나무 숲을 산책할 때 유명한 시들이 걸려있는 길이 있었다. 다른 이들도 없어서 고즈넉한 산책길이 우리만의 전용 전나무 숲이 된 것 같아 매우 기분 좋게 걷고 있었다.
여러 시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걸어가면서 김춘수의 '꽃'이 깊은 인상을 주어서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이름을 불러줄 때 의미가 부여되고, 잊혀지지 않는 서로에게 깊은 의미를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한창 만남을 이어가던 시기여서 감정이 불타오를 때여서 그런지 우리에게 더 와 닿았던 시였다.
지금도 결혼 전 데이트하던 추억을 얘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얘기되는 단골 소재가 바로 오대산 전나무 숲에서의 꽃이다.
우리는 누구나 특정 대상 또는 많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고 싶다.
아무리 명예욕이나 이름을 알려지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고 해도, 최소한 가족에게는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조금 더하면 지인에게, 더 나아가면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게 남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을 것이다.
나는 과연 누구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좀 더 와 닿고, 생각이 더 해지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의미 있는 사람에 더하여 좋은 의미의 존재,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로 기억되고 남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를 다시 점검해보고
그러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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