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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글쓰기1 - 육사(陸史)를 기억하며

by 필담's 2020.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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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내가 가장 먼저 접한 육사의 시는 청포도였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내게 시을 읽을 때 마음의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던, 내게 국어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던 시였다. 맑고 하늘과 푸르디 푸른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얀 식탁보위에 은쟁반에 놓인 청포도를 머릿속에 그려주었던 이 시를 통해 육사를 만나게 되었다. 이 시를 처음 읽고 느꼈던 마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고, 그렇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시를 만난 후 잠시나마 문학과 시를 짓는 문학소년을 꿈꾸게 했었다.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후 절정, 광야를 접하며서 그저 맑고 순수한 시인의 이미지가 지평선이 보이는 벌판에 서서 모든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극복하며 굳건히 서있는 초인의 모습을 가진 육사의 이미지로 바뀌어갔다.

역사를 배우고 시인을 알게되며 일제의 시기에 지식인으로써 식민지배에 맞서 싸우는 그의 모습을 알게 되면서 나도 그가 기다리는 초인을 함께 기다리게 되었다.

 

 그의 시를 통해 국어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그의 삶을 알아 가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며 내 청소년 시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육사를 75주년 광복절을 맞이하며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이젠 문학소년을 꿈꾸던 까까머리 중학생도 아니고, 삶의 풍파에 감정은 무디어 졌지만, 여전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게 울림을 주었던 육사의 시를 기억하며 추억한다. 

 길지 않은 삶 동안 많지 않은 시를 통해 자신의 인생과 생각을 남겼던 육사와 같이 나도 이제 시작하는 글쓰기를 통해 나만의 생각과 삶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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