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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담's 2020.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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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긴 장마가 물러가고 불볕이 언제 물난리가 난냐는 듯이 지면을 달구고 있다.

뜨거운 태양을 보며 학교에서 배웠던 박두진 시인의 '해'가 생각났다.

 

숙제로 외웠던 기억이 있는 이 시는 이런 저런 해석들을 공부했던 기억이 있지만, 

외우면서 들었던 기억은 반복되는 구절과 구조가 있어서 기억하기 좋았다는 것이었고,

마지막 구절의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액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부분이 인상 깊었었다.

 

당시에는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외우던 시기였지만, 모두 한자리에 앉아서 좋은 날을 함께 누리자는 표현이 좋았었다.

 

우리네 사람들 대부분이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시기여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해가 솟으면 함께 모여 좋은 날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찬 메시지는 어린 내 마음에도 기분 좋음을 가져다주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이를 먹어갈수록 일출을 보면서도 마음이 무디어졌지만, 

20여 년 전, 처음 일출을 보며 해가 뜨는 순간에 느꼈던 감동과 마음의 차오름은 여전히 기억나고

일출을 보며 떠 올렸던 위의 시 '해'가 내게 주었던 마음의 울림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해야 솟아라, 

고운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우리 모두 한자리에 둘러앉아,

추억 속의 고왔던 날과 맞이할 기쁜 날을 함께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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