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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고향

by 필담's 2020.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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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퇴근하며 고속도로를 달리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의 논을 보며 문득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 생각났다.

요즘 글쓰기를 하며 수십년간 머릿속에서 잊힌 줄 알았던 교과서의 시들이 조금씩 생각이 난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라고 표현하던 시인의 감탄과 감성이 느껴졌다.

비록 시인이 느끼던 그립고 추억이 쌓이던 고향까지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시골집을 방문해서 경험했던 예스러운 기억들이 생각났다.

아궁이와 무쇠솥으로 지었던 밥과 나물반찬들, 집 뒷편의 대나무 숲, 나지막한 언덕 위의 온갖 종류의 과실수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하나 하나 인상 깊게 경험했던 짧은 기억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인이 그토록 추억하며, 꿈에도 잊을 수 없었던 고향의 모습과 그리운 사람들과 같이 

우리 삶에서도 추억하며 그리워 하는 것들이 많을수록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게 많아질 것 같다.

마음이 울적해지고, 기분이 다운되어도 그립고 좋았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흐릿한 기억을 좇아서 어릴적 추억이 서려있는 시골집을 다시 방문해서 바람 불던 대숲의 소리와 

주렁주렁 달려서 가을을 기대하게 했던 사과나무, 감나무, 배나무 들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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